한 쪽 성경공부 29.ONE  PAGE BIBLE STUDY 29_    Ver.9.07

김민호 목사 지음

 

우상에 빠진 유다



 

(Diachronic synopsis)


유다 왕국도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우상숭배에 빠져들었습니다. 요시야와 같은 몇몇 선왕들이 통치하던 시대에는 우상숭배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고 가증한 우상숭배를 타파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개혁도 계속되지 못했습니다. 남 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고 가나안 종교의 우상숭배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다윗 왕조의 왕들 모두 하나님을 바로 섬긴 선왕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왕들이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이스라엘과 다르게 남 왕국은 아사,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와 같은 선왕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를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습니다. 유다 왕들 중에서 14대 왕 므낫세가 통치할 때는 이스라엘 아합 왕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므낫세의 우상 숭배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그의 손자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할 때 행한 일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시야는 아세라 목상뿐만 아니라 새기거나 부어 만든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헐어 버리며, 또 사마리아 산당 제사장들을 그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제단 위에서 불살라버렸습니다. 그만큼 유다 왕국은 우상숭배로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으로 유다는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려 하는데...



            Contents
1. 율법을 버리기 시작하는 유다 왕국
2. 여호사밧의 불의한 교제와 그 결말
3. 서서히 우상 숭배에 빠져드는 유다
4. 히스기야의 개혁
5.다시 시행하는 대 유월절(대하30장)
6. 잘못된 비전과 열정으로 채워진 남 유다 왕국의 므낫세
7. 요시야의 마지막 개혁

 


        
돌아가면서 읽기
      
(Reading one by one)



율법을 버리기 시작하는 르호보암,
우상숭배를 개혁하는 아사, 여호사밧



솔로몬의 왕국을 이어받은 르호보암은 유다를 방어하기 위하여 여러 성읍들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다와 베냐민 땅에 베들레헴, 에담, 드고아, 벧술, 소고, 아둘람, 가드, 마레사, 십, 아도라임, 라기스, 아세가, 소라, 아얄론, 그리고 헤브론 성읍을 건축하고 수비를 강화했습니다.1) 그러나 르호보암은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도 그의 행위를 본받았습니다.(대하12:1)
하나님께서 르호보암과 그 방백들에게 선지자 스마야를 보내 애굽 왕 시삭에게 붙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뜻밖에 르호보암은 스스로 겸비함을 취했습니다. 그에게 선한 행위도 있었습니다.(대하12:12) 그로인해 하나님께서는 노를 돌이켜 다 멸하지 아니하시고 시삭의 종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하나님을 버리고 애굽 왕 시삭을 섬기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시삭은 예루살렘을 치고 왕궁의 보물을 몰수이 빼앗고 솔로몬의 금방패도 빼앗아갔습니다. 그리하여 르호보암은 그 대신 놋방패를 만들어 궁을 지키는 시위대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니 솔로몬에게 주셨던 부귀와 영광도 사라져버리고 애굽에 종노롯 해야 했습니다. 그가 15성읍을 만들어 나라를 방비하였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유다에게 주셨던 평화의 때도 계속되지 못했습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전쟁은 대를 이어 계속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왕이된 아비야(아비얌)도 여로보암과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비야는 르호보암과 다르게 하나님 앞에 선한 마음을 품은 왕이었습니다.(왕상14:3, 대하13장) 그는 용맹한 군사 400,000명으로 여로보암 800,000명의 군사와 싸워 500,000명이나 엎드러뜨렸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를 얻었습니다. 아비야는 그 열조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대하13:18) 여로보암의 성읍 벧엘과 그 동네, 여사나와 그 동네, 에브론과 그 동네를 취하면서 점점 강성하여 졌습니다. 그는 아내 열넷을 취하여 아들 스물둘 딸 열여섯을 낳았습니다.



아사 왕


아비야를 뒤를 이어 그 아들 아사가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아사는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했던 선왕이었습니다. 그는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훼파하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들에게 명하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하고 그 율법과 명령을 행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유다 성읍 안에 있는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고 나라의 평안을 누리게 했습니다.(대하14:2-5)
아사 왕은 아사랴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대하15:2-7)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가증한 물건을 제하고 에브라임 산지에서 빼앗은 성읍들에서도 가증한 물건들을 제하고 또 여호와의 낭실 앞 여호와의 단을 중수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사는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를 모았는데 이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사와 함께 하시므로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 백성들 가운데서도 아사에게로 돌아오는 자가 많았습니다. 아사는 그들을 모아 아사 왕 15년 3월에 예루살렘에서 소 700마리와 양 7,000마리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맹세했습니다.(대하15:9-14)
그러나 아사의 행위는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아사 왕 36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 라마를 건축하고 유다 사람을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라마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국경 지역이었으므로 이스라엘이 라마에 요새를 구축하자 위협을 느낀 아사는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취하고 아람 왕 벤하닷에게 주고 아람이 이스라엘과 체결한 조약을 파기하고 자신을 도우라고 했습니다. 아람은 군대 장관들을 보내어 이스라엘의 이욘, 단, 아벨마임, 납달리의 모든 국고성을 쳤습니다. 바아사는 라마를 건축하던 일을 멈추었습니다. 아사는 라마를 건축하던 바아사의 건축 재료, 돌과 재목을 수운하여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했습니다.
아사는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을 의지하는 불신앙의 죄를 범했습니다.(대하16:7) 선견자 하나니는 아사에게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자 아람 왕의 군대가 아사 왕의 손에서 벗어났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니는 이전에 아사가 방패와 창 잡는 자 300,000명과 작은 방패를 잡으며 활을 쏘는 자 280,000명으로 마레사로 나아온 구스 사람 세라의 병거 300승과 1,000,000명을 그랄에 이르기까지 쫓아가 멸절시킨 전쟁(대하14:9-15)을 상기시키면서 전쟁이 군사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말미암는 다는 사실을 망각한 아사를 책망했습니다. 하나니는 이후로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여호사밧의 통치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은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고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하나님께 구하며 그 계명대로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좇지 아니한 선왕이었습니다.(대하17:3-4)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셨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려 왕의 부귀와 영광은 크게 존귀하게 되었습니다.(대하17:5) 여호사밧은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하고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했습니다. 아사 왕은 즉위 3년에 벤하일, 오바댜, 스가랴, 느다넬, 그리고 미가야와 같은 방백들을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가르치게 하였으며 스마야, 느다냐, 스바댜, 아사헬, 스미라못, 여호나단, 아도니야, 도비야, 그리고 도바도니야와 같은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 엘리사마와 여호람을 보내어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 모든 성읍을 순회하면서 백성들을 가르치게 했습니다.(대하19:4)
 여호사밧 자신도 예루살렘에 거하여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백성들에게 나아가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권면했습니다. 그는 각 성마다 재판관을 세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쪽으로 치우쳐 편벽됨이 없게 하고 뇌물을 받지 못하게 하며 또 불의한 재판을 하지 못하도록 사법 체계를 개혁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에서 레위 사람과 제사장과 족장 중에서 사람을 세워 여호와께 속한 일과 예루살렘 거민에 속한 일을 분리하여 재판하도록 했습니다. 여호와께 속한 모든 일에는 대제사장 아마랴를 세워 백성들을 다스리게 하고, 왕에게 속한 모든 일에는 유다 지파 어른 이스마엘의 아들 스바댜를 통해 다스리도록 위임하여 유다에 ‘하나님의 의’와 ‘공의’가 실현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레위 사람들은 관리가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도(道)를 굳게 세우고 우상을 타파하며 사법 체계를 바로잡아 사회의 기강을 정립하였고 신앙의 법도와 사회적 법도 모두를 온전하게 하여 통치 질서를 새롭게 했습니다.





여호사밧의 불의한 교제와 위기


여호사밧은 훌륭한 믿음을 가진 왕이었지만 그에게 씻지 못할 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온갖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왕 아합과 교제를 나눈 것이었습니다. 의인이 악인과 교제를 나누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여호사밧은 자신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시킴으로서 사돈을 맺었습니다. 이러한 결혼은 아합 가문의 우상숭배의 악행을 아합의 사위인 여호람이 그대로 본받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여호사밧이 조상에게로 돌아간 후 그의 장자 여호람이 32세에 보위에 올랐습니다. 그가 세력을 얻은 후에 자신의 동생 6명 모두 칼로 죽였습니다. 그는 유다 여러 산에 산당을 세워 예루살렘 백성들로 하여금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도록 유혹했습니다. 여호람은 아합의 집안의 행위를 본받아 심히 악을 행했습니다.(대하20:35) 그렇게 악행을 일삼던 여호람은 창자에 고치지 못할 병이 들었고 창자가 몸 밖으로 흘러 나와 죽고 말았습니다.
  의인의 가문과 악인의 가문 사이에서 아하시야라 인물이 한 사람씩 나왔습니다. 아합은 이세벨과의 사이에서 아들 아하시야를 낳았고 여호사밧은 그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 사이에서 손자 아하시야를 얻었습니다. 의인의 집과 악인의 집이 사돈을 맺어 이처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길르앗 라못에서 전쟁을 치루고 집에 돌아오는 여호사밧을 나가서 맞이하여 여호사밧의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2...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대하19:2)


여호사밧의 부주의한 신앙은 아합의 손자 아하시야 왕과 교제를 나누는 친절함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아합의 손자 아하시야 왕과 의기투합하여 에시온 게벨에서 함께 배를 지어 다시스로 보내려고 하자 이러한 불의 한 교제를 하나님께서 허락치 아니하시고 그 배를 깨어버리시고 다시스로 가지 못하게 하신 일도 있었습니다.(대하20:35-37) 여호사밧의 불의한 교제의 결말은 참담한 비극으로 다가왔습니다.
 아합의 아들 요람이, 아람 왕 하세엘과 싸울 때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이스라엘로 올라와 치료하고 있을 때 유다 왕 여호사밧의 손자, 여호람의 말째 아들 아하시야가 요람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안을 심판하실 때였으므로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아합의 심판자 예후가 찾아왔습니다. 요람과 유다왕 아하시야가 예후를 맞이했습니다. 예후는 요람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아하시야는 도망가 사마리아에 숨어 있다가 예후에게로 붙들려와 죽었습니다.2)(대하22:8-9, cf.왕하9:27)
여호사밧이 하나님 앞에서 우상을 타파하고 바른 자세를 가졌을 지라도 악을 행하는 아합과 사귀고 사돈을 맺으며 친밀한 교제를 나눈 그 행위의 결과는 악인의 집의 악이 자신의 집에 들어오게 되어 악인과 함께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아하시야의 집이 약해지고 더 이상 왕위를 이을 자가 없게 되자 아하시야의 모친 아합의 딸 아달랴가 일어나 자신의 유일한 아들 아하시야가 죽었으므로 왕의 다른 아들들을 모두 죽여 왕위를 이을 씨를 멸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선왕 여호사밧이 시작한 악인 아합과의 교제의 결말은 커다란 불행을 불러들였습니다. 마침내 유다 왕국의 명맥도 끊어질 상황이었습니다. 아달랴는 아하시아의 다른 왕자들을 모두 죽여 왕의 씨를 진멸하였는데 이때 아하시야의 누이이며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 여호사브앗(여호세바)이 아하시야의 아들 젖먹이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할 때에 몰래 도적질 하여 요아스와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의 칼날에서 구원해냈습니다. 유다는 우상숭배의 집안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서 난 딸3) 아달랴에 의해 6년간 통치되었으며 그녀의 통치 기간 동안 요아스는 하나님의 전에서 6년을 숨어 지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여호와께서 다윗 자손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고(대하23:3) 다윗의 후손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생존 왕자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기 위하여 레위 사람들과 유다 무리에게 명하여 즉위식을 준비시켰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 곧 안식일에 입번할 자 1/3은 문을 지키게 하고, 1/3은 왕궁에 있게 하고 1/3은 기초문에 있게 하고 또 백성들은 여호와의 전 뜰에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레위 사람들은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고 다른 사람들이 전에 들어오면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다윗 왕의 창과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백부장에게 주고 백성들의 손에 병기를 잡게 하고 전 우편에서 좌편까지 단과 전 곁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무리가 왕자 요아스를 전으로 인도하여 면류관을 씌우고 율법책을 주고 여호야다와 그 아들들이 요아스에게 기름 붓고 만세를 부르며 왕으로 세웠습니다.
  성전에서 요아스를 왕위로 옹립하며 왕은 전 문 기둥 곁에 섰고 장관들과 나팔수가 왕 곁에서 모셔 섰는데 백성은 즐거워하고 나팔을 불며 노래하는 자는 악기로 연주하며 찬송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아달랴는 성전에 들어와 백성들에게 이르러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라고 외쳤습니다. 성전에서 피를 흘릴 수 없으므로 제사장 여호야다는 아달랴를 성전에서 죽이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무리들이 길을 열어 아달랴를 성전 밖으로 몰아내고 아달랴를 왕궁 마문(馬門)에서 죽였습니다.(대하23:15)
 왕과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자신과 뭇 백성들과 요아스 사이에 여호와의 백성이 되기를 언약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바알의 신전으로 들어가서 그 단들과 우상들을 깨뜨리고 그 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였습니다.(대하23:16-17)
 여호사밧의 불의한 교제가 낳은 유다 왕국의 단절의 위기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에 의해극 복되어졌으며 다윗의 왕국은 보존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호야다는 다윗이 정한 대로 전(殿)에 직원들을 세워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에게 맡기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를 드리며 제사를 회복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아달랴의 통치 아래 하나님의 전은 파괴되었습니다. 아달랴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전을 깨뜨리고 또 여호와의 전의 모든 성물들을 바알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에 사용하는 악행들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대하24:7)
 7살 나이에 왕위에 올랐던 요아스는 하나님의 성전을 중수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성전세를 거두었습니다. 그 성전세로 석수, 목수, 철, 놋을 다루는 기술자들을 고용해서 성전을 수리하고 하나님의 전을 이전의 모양대로 회복시키고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금, 은 등으로 여호와의 전에서 사용할 제기들을 만들고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사는 날까지 하나님의 전에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는 다시 백성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하나님의 신의 감동으로 백성들 앞에 높이 섰습니다. 스가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 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라고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요아스는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저버리고 그의 아들 스가랴를 죽였습니다. 스가랴는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라고 말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스가랴가 죽은 지 1년 후에 적은 무리의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러 올라왔는데 여호와께서는 큰 무리의 유다 사람들을 아람 군대에 붙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전쟁에서 요아스는 크게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때 신복들은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인하여 모반하고 침상에서 요아스를 쳐 죽였습니다.
 



서서히 우상 숭배에 빠져드는 유다


요아스가 죽자 그의 아들 아마샤가 25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아마샤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했으나 온전히 행치 않았습니다. 그는 에돔 사람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 세일 자손의 우상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서 경배하며 분향했습니다.(대하25:14) 그때 한 선지자가 일어나 세일 자손의 우상에게 구하는 아마샤를 책망했습니다. 아마샤는 그의 경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아마샤를 멸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마샤는 조언을 구한 후 이스라엘 왕 요아스(여호아하스)에게 서로 대면하자며 전쟁을 걸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와 아마샤는 유다의 벧세메스 모여들어 대면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아마샤는 패하고 사로잡혔고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예루살렘에 이르러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예루살렘 성벽 400규빗이 헐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 안에 오벧에돔이 관장하던 모든 금은과 기명과 왕궁의 재물과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 사마리아로 끌고갔습니다.(대하25:23-24)
 아마샤는 요아스가 죽은 후 15년을 더 살았지만 에돔 신들에게 구하던 우상숭배자 아마샤는 예루살렘에서 그의 신하들이 모반하여 라기스로 도망쳤는데 라기스로 보냄 받은 무리에 의해 그곳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신앙을 지켜나가지 못했던 왕들로 인해 가나안의 우상들이 유다 백성들에게 들어왔습니다.
 아마샤가 열조에게 돌아가고 그의 아들 웃시야(아사랴)가 16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웃시야는 하나님을 경외했으나 산당은 제거하지 않아 백성들이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도록 방치했습니다. 그는 제사장들만이 할 수 있는 성소의 분향을 자신이 직접 하다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 일로 그는 별궁에 거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대하26:21)
 웃시야가 열조에게 돌아가고 그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었습니다. 요담 또한 웃시야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으로 번영한 유다 백성들 엮시 사악한 행위를 버리지 않았습니다.(대하27:2)
 요담이 열조에게 돌아가고 그의 아들 아하스가 20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도 아니하였으며 북 이스라엘 왕들처럼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며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분명 몰렉의 제사에 참여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더 나아가 산당과 작은 산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했습니다. 그러한 우상 숭배의 현장은 도처에 널려 있었으므로 아하스의 우상 숭배는 유다 전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아하스의 배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아람 왕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아람 왕이 와서 유다를 치고 심히 많은 무리를 다메섹(아람의 수도)으로 잡아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하스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대하28:6) 이로 인해 이스라엘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 용사 120,000명을 죽였습니다. 에브라임 용사 시그리는 왕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 대신 아스리감과 총리 대신 엘가나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유다 자손의 아내와 자녀들을 200,000명을 사로잡고 많은 재물을 노략하여 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오뎃에 의해 책망 받고 되돌려 보내야 했습니다.(대하28:8-15)
 에돔 사람들도 다시 와서 유다를 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았으며 블레셋 사람들도 유다의 평지와 남방 일부 성읍들을 침노하고 탈취했습니다.4) 하나님께서 유다를 낮추려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아하스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데셀 3세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대하28:16) 앗수르 왕이 왔으나 유다를 돕지 않고 오히려 괴롭게 할 뿐이었습니다.(대하28:20) 아하스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지만 아무런 유익도 없었습니다. 아하스가 더욱 곤고하게 되자 그는 하나님께 더욱 범죄하였습니다. 그는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 드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람 열왕의 신들이 저희를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대하28:23)


아하스는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두 훼파하고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단을 쌓았습니다.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여 하나님의 노를 격발케 했습니다. 유다에도 이스라엘처럼 우상 숭배가 만연하게 되었고 온 이스라엘을 멸망으로 끌고 갔습니다. 아하스는 죽어 예루살렘에 묻혔으나 왕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아하스가 죽자 그 아들 히스기야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히스기야의 개혁


히스기야는 유다의 왕들 가운데 몇 안 되는 위대한 왕입니다. 그는 왕이 되어 B.C. 715년 유다를 통치하는 첫 달에 부친 아하스가 닫아 놓은 성전 문을 열어 하나님의 전을 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레위인들을 동편 광장에 모으고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제사를 폐하여 하나님의 진노로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된 자신들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다시 세워 하나님의 진로를 떠나게 하려는 자신의 마음을 역설했습니다.(대하29:5-11) 그러자 마핫, 기스, 요아 등과 같은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스스로를 성결케 하고 여호와의 전을 깨끗케 했습니다. 제사장들도 여호와의 전을 깨끗케 하여 성전을 더럽혔던 모든 물건들을 여호와의 전 뜰에 내어놓았습니다. (대하29:16) 레위 사람들이 이것들을 기드론 시내로 가져갔습니다. 보름동안 성전의 안팎을 성결케 한 레위인들은 성전 모두와 버제단, 그 기구들, 떡을 진설하는 상 등 모든 기구를 깨끗이 했습니다. 히스가야의 부친 아하스가 우상숭배의 악행을 저지르면서 내어 버린 여호와의 전의 기명들을 정돈하고 성결케 하여 여호와의 단 앞에 두었습니다. 그 다음날 히스기야는 온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번제와 속죄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선견자 갓과 나단이 명한 대로 레위 사람들은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제사장은 나팔을 불었으며 번제를 드리는 그 때에 맞추어 시로 노래하며 나팔을 불고 다윗의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온 회중은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대하29:25)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의 제물을 들고 나아왔습니다. 수소가 70마리, 수양 100마리, 어린 양 200마리를 번제로 드렸으며 500마리의 수소와 3,000마리의 양을 번제와 감사제로 드렸습니다.





다시 시행하는 대 유월절(대하30장)


히스기야는 그동안 하나님께 드리지 못했던 유월절 행사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그 유월절 행사가 유다의 행사가 아닌 온 이스라엘의 행사가 되게 하기 위하여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온 백성이 이 일을 선하게 여겼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단에 이르기 까지 유월절을 지키라고 반포되었습니다. 유월절은 첫째 달에 지켜지는 것이었지만 제사장도 충분하지 못했고 정한 때에 지킬 수 없어서 이월( 4-5월)에 거행했습니다. 심히 많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이방 제단들과 향단들을 모두 제거하여 기드론 시내에 던져버리고 2월 14일에 유월절 양을 잡았습니다. 유월절에 이어 7일간 무교절을 지키면서 먹고 화목제를 드리며 조상의 하나님께 즐거움으로 찬양과 감사를 드렸습지다. 그들의 기쁨은 넘치는 것이었으며 그리하여 7일간의 무교절을 더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급기야 히스기야는 자신의 수송아지 1,000마리 양 7,000마리를 회중들에게 내어주고 그의 방백들도 수송아지 1,000마리 양10,000마리를 내어주었습니다. 이 유월절에 유다와 이스라엘과 또 그들과 함께 우거하던 나그네 모두가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이러한 즐거움과 희락은 솔로몬 시대에도 없었던 것이었으며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 백성을 축복하였고 그의 기도는 거룩한 처소 하늘까지 상달되었습니다. 이 유월절이 마쳐지자 이스라엘 무리들이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과 단을 제하여 멸하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자기 기업으로 돌아갔습니다.
 히스기야는 예배 제도를 개선하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반차를 정하고 그 직임을 수행하게 했으며 백성들에게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여호와의 율법에 힘쓰도록 그들을 돕고 그들의 몫을 주도록 명했습니다. 왕의 명령이 내리자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 포도주, 기름, 꿀, 밭의 소산의 맏물을 드리고 모든 것의 십일조를 가져왔으며 유다 자손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또 구별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왔는데 얼마나 많이 바쳤는지 더미를 쌓았습니다.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전 안에 방을 예비하라고 명했고 예물과 십일조와 구별한 물건을 갖다 두고 레위 사람 고나냐가 그 일을 주관하고 그 아우 시므이가 버금이 되어 10명의 수하의 도움을 받아 관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동문지기 레위 사람 임나의 아들 고레는 자원하여 즐거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낙헌제의 성물)을 맡아 관리 하고(대하31:14) 그 수하에 에덴, 미냐민, 예수아, 스마야, 아마랴, 스가냐 6명을 거느리고 예루살렘 이외의 13개 지역에 거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배분하여 그들의 가족의 쓸 것을 충당했고 궁핍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전에 섬기는 일이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구하고 형통한 왕이었습니다. (대하31:21)
 때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쳐들어와 유다의 견고한 성읍을 쳐서 취하려고 했습니다. 산헤립은 이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하며 비방했습니다.


“10. 앗수르 왕 산헤립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예루살렘에 에워싸여 있으면서 무엇을 의뢰하느냐
11. 히스기야가 너희를 꾀어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하거니와 이 어찌 너희로 주림과 목마름으로 죽게 함이 아니냐
12. 이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들과 단들을 제하여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다만 한 단 앞에서 경배하고 그 위에 분향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13. 나와 내 열조가 이방 모든 백성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열방의 신들이 능히 그 땅을 나의 손에서 건져 낼 수 있었느냐
14. 나의 열조가 진멸한 열국의 그 모든 신 중에 누가 능히 그 백성을 내 손에서 건져내었기에 너희 하나님이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15. 그런즉 이와 같이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꾀임을 받지 말라 저를 믿지도 말라 아무 백성이나 아무 나라의 신도 능히 그 백성을 나의 손과 나의 열조의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였나니 하물며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겠느냐 하였더라“(대하32:10-15)


히스기야는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선지자와 함께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장관들을 멸했습니다. 산헤립은 얼굴이 뜨뜻하여 고국으로 돌아갔으나 그의 신전에 들어갔을 때 그 자식들에 의해 칼로 살해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거민들을 산헤립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시고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사람들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히스기야에게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후로부터 히스기야는 열방 가운데 존대하게 되었습니다.(대하23:23)
 히스기야는 열조와 함께 잠들었습니다.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은 다윗의 자손 묘실 중에 높은 곳에 장사하고 히스기야의 죽음에 존경을 표했습니다.





잘못된 비전과 열정으로 채워진
남 유다 왕국의 므낫세


히스기야가 조상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선왕 히스기야에게 이스라엘 왕 아합을 능가하는 아들 므낫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므낫세는 그의 통치비전을 이방사람들의 가증한 우상 숭배에서 찾았다는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와 다르게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들에 대한 열정과 비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5)을 다시 세웠으며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숭배하여 섬기고 심지어 여호와의 전에다 이방 신의 단을 쌓고 이방 신들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의 조부 아하스 왕이 그랬듯이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6) 악행을 저지르고 점을 치고 사술7)과 요술8)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9)를 신임하여 가까이 두어 여호와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였습니다. 므낫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워두었습니다. 이러한 므낫세의 악행은 전례에 보기 드문 것이었으며 그러한 악행과 꾀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우상 숭배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습니다.(대하33:9)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파멸로 이끌어갔습니다. 그 악행의 정도는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망시켜버린 이방나라보다 더욱 심한 것이었습니다.(대하33:9) 그는 예루살렘에서 무죄하고 경건한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왕하31:10-15)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도 므낫세 치세에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했다고 하니10) 그의 우상에 대한 열정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므낫세의 2막


 하나님께서는 므낫세와 그 백성들에게 이르는 말씀을 그들이 듣지 않았으므로 앗수르 군대 장관들로 하여금 유다를 공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므낫세는 쇠사슬로 결박되어 사로잡혀가고 환란을 당한 후에 크게 겸비하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 왕위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므낫세는 비로서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대하33:13) 므낫세는 앗수르에 끌려가 환란을 당했으므로 기혼 서편 골짜기 안에 외성을 쌓았는데 어문(魚門) 어귀까지 오벨을 둘러 심히 높이 쌓았습니다. 그리고 견고한 모든 성에 군대 장관을 배치하여 앗수르의 재침공을 대비했습니다. 므낫세는 이방 신전과 여호와의 전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고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산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만들었던 모든 단들을 성 밖으로 던졌습니다. 므낫세는 여호와의 단을 중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단 위에서 드리고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명령했습니다. 백성들은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렸으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므낫세가 장사되고 그 아들 아몬이 왕이 되었습니다. 아몬은 20세에 왕이 되어 2년을 다스렸는데 므낫세의 우상숭배를 본받아 악을 행하며 므낫세가 만든 아로새긴 모든 우상에게 제사하고 섬겼으며 더욱 죄를 범했습니다. 이러첨 우상을 숭배하는 왕들에게 모반의 역사는 계속되었습니다. 아몬의 신복이 반역하여 궁중에서 그를 죽였는데 백성들은 그 반역자들을 모두 죽이고 아몬의 아들 요시야로 왕을 삼았습니다.




요시야의 마지막 개혁


어린 요시야는 8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31년 다스렸습니다. 요시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다윗의 길로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으며 위에 오른 지 8년 곧 16세 때에 하나님을 비로소 구하고 12년 곧 20세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케 했습니다. 당시 유다에 얼마나 우상 숭배가 만연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알 숭배와 아세라 숭배 그리고 태양신을 비롯하여 온 이스라엘 안에 우상 숭배는 깊숙이 배여 있었습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 의지는 분명했습니다. 그는 산당을 제하여 버렸습니다. 그 안에 아세라 목상들, 아로새긴 우상들,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했습니다. 바알의 단들을 훼파하였으며 왕이 그 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을 찍고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모두 빻아 가루를 만들고 그곳에 제사를 드리던 자들의 무덤에다 뿌렸습니다. 왕은 더 나아가 이방 제사장들의 뼈를 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케 하였습니다. 요시야의 정결 작업은 유다를 넘어 므낫세, 에브라임, 시므온, 납달리 지역까지 사면으로 퍼졌습니다. 단들을 헐어버리고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면서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대하34:3-7)
 요시야 8년에 그 땅과 성전을 정결케 하기를 마치고 성전을 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시야는 사반, 마아세야 그리고 요아 세 사람을 보내어 이전에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온 유다와 베냐민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거둔 성전 헌금을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주어 성전 보수 및 그 재료들을 준비할 수 있게 하고, 힐기야는 성전 역사를 감독하는 자들에게 이 연보를 주어 목수, 건축하는 자에게 품삯을 주어 성전을 수리하게 하였습니다. 성전 공사의 감독은 레위 사람 므라리 자손 야핫과 오바댜 그리고 그핫 자손 스가랴와 무술람이 했으며 음악에 익숙한 레위 사람이 함께 했습니다. 그들은 품꾼의 삯을 주고 감독했으며 어떤 레위 사람은 서기와 관리 그리고 무지기가 되었습니다.(대하34:13)
 성전이 수리되었습니다. 어느 날 연보 궤에서 백성들이 헌금한 돈을 꺼내다가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했습니다. 이 책은 서기관 사반에게 전달되었고 사반은 왕에게 가져갔습니다. 서기관 사반은 제사장 힐기야가 전달해 준 율법책을 왕에게 읽어드렸습니다. 그러자 말씀을 깨달은 요시야는 말씀에 의분을 느껴 옷을 찢었습니다. 요시야는 힐기야를 비롯한 몇몇 신하들에게 발견한 그 율법책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지 여호와께 물어보라고 명했습니다. 요시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와 형편이 분명 그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준행치 아니함을 인하여 하나님의 크신 진노가 내렸다고 생각했습니다.


"21. 너희는 가서 나와 및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대하34:21)


이 한 권의 율법책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유대와 이스라엘 내에서 하나님의 율법책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으로부터 멀리서 달려왔던 것입니다.
 왕의 명령을 받은 신하들은 예복을 관리하던 살룸의 아내 여 선지자 훌다에게로 가져가 율법책의 말씀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훌다는 그 책에 기록된 저주의 말씀대로 그 땅에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요시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 그리고 유다 및 예루살렘 거민들 모두가 예루살렘에 모여들었습니다. 왕은 율법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백성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언약을 세우고 말했습니다.


"31.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대하34:31)


요시야는 예루살렘과 베냐민에 있는 백성들로 하여금 그 언약에 참여하도록 명했습니다. 백성들은 요시야의 언약을 따랐습니다. 요시야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을 모두 제거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요시야가 살아 있는 날에 백성들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요시야의 유월절


그렇게 성전이 보수되자 요시야는 정월 14일에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제사장들에게 직분을 맡기고 레위 사람들을 시켜 여호와의 거룩한 언약궤를 솔로몬 성전 가운데 두게 하고 더 이상 레위 사람들이 어깨에 메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제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다윗과 솔로몬이 확립한 제사장들의 반차와 레위인의 직분(대하8:14)에 따라 성전에서 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유월절 어린 양을 잡고 백성들을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했습니다. 요시야는 자기 소유 어린 양과 어린 염소 30,000마리, 수소 3,000마리를 유월절 제물로 주었습니다. 방백들도 제물을 드렸으며, 고나냐와 그 형제를 비롯한 레위인들의 우두머리들은 양 5,000마리, 수소500마리를 레위 사람들에게 유월절 제물로 주었습니다. 아삽의 자손 노래하는 자들도 자기 처소에 있고, 문지기들도 각각의 문에 준비되었습니다. 요시아 왕의 명령대로 유월절을 지키며 번제를 여호와의 단에 드렸고 유월절과 7일간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요시야의 유월절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유다와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과 예루살렘 거민들 모두가 함께 지킨 가장 성대한 유월절이었습니다.
 요시야가 죽어 조상에게 돌아가고 B.C. 609년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여호아하스, 그의 형제 여호야김(엘리아김), 그의 아들 여호야긴, 그의 삼촌 시드기야로 이어지는 유다 왕국11)은 애굽과 바벨론 제국간의 패권 다툼 속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지 않고 세상 왕들을 의지하면서 꺼져가는 왕국의 불씨를 살리기 위하여 몸부림쳐야 했습니다.
 








1) 르호보암의 15 성읍





2)왕하9:27에는 아하시야가 부상을 입고 도망하여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까지 쫓아와 마차로 도망하는 아하시야를 쳤는데 아하시야는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그곳에서 죽었다.


3) 아달랴가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 태어났다고 하는 분명한 기록이 없는데 아마도 그는 아합의 딸로서(대하21:6) 이세벨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추정된다.

4) 블레셋이 탈취한 성읍은 벧세메스, 아얄론 그데롯, 소고와 그 동네, 딤나와 그 동네, 김소와 그 동네이다.


5)산당은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세워진 시설물이다. 솔로몬 초기에 성전이 지어지기 전부터 이 이방신을 섬기는 산당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 기록도 보인다.(왕상3:2)


6)암몬 족속의 주신 몰록(밀곰)은 인신제사를 드리는 사악한 우상이었다.


7)악한 영들로부터 힘을 얻는 것,


Eugene H. Merrill., The Bible Knowledge Comentary, 1CHONICLES, 2CHONICLES,이명준, 이종록 역,두란노, 1989. p162(P.256)


8)Ibid., 악한 영들과 교통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려 하는 것.


9)남자무당


10)Bible Dictionary, p520 아가페


11)


 남 유다 왕조


 1. 르호보암(B.C.931년-B.C.913년) 17
 2. 아비얌(아비야)(B.C.913년-B.C.911년) 3
 3. 아사(B.C.911년-B.C.870년) 41
    여호사밧(B.C.873-870)
*공동섭정 (3)
 4. 여호사밧(B.C.873년-B.C.848년) 25
    여호람(요람)(B.C.853-B.C.848)
    *공동섭정 (5)
 5. 여호람(요람)(B.C.848년-B.C.841년) 8
 6. 아하시야(B.C.841년) 1
 7. 아달랴 여왕(B.C.841년-B.C.835년) 6
 8. 요아스(B.C.835년-B.C.796년) 40
 9. 아마샤(B.C.796년-B.C.767년) 29
    웃시야(아사랴)(B.C.790년-767년)
    *아마샤 밑에서 부섭정 (23)
 10. 웃시야(아사랴)(B.C.790년-B.C.739년) 52
     요담(B.C.750년-B.C.739년)
     *공동섭정 (11)
 11. 요담(B.C.750년-B.C.735년) 16
     아하스(B.C.744년-B.C.735년)
     *요담 밑에서 부섭정 (9)
아하스(B.C.735년-B.C.732년)
     *요담과 공동섭정 (4)
 12. 아하스(B.C.732년-B.C.715년) 16
     히스기야(B.C.729년-B.C.715년)
     *아하스 밑에서 부섭정 (14)
 13. 히스기야(B.C.715년-B.C.686년) 29
     므낫세(B.C.697년-B.C.686년)
     *히스기야 밑에서 부섭정 (11)
 14. 므낫세(B.C.697년-B.C.642년) 55
 15. 아몬(B.C.642년-B.C.640년) 2
 16. 요시야(B.C.640년-B.C.609년) 31
 17.여호아하스(B.C.609년) (3)
 18. 여호야김(B.C.609년-B.C.598년) 11
 19. 여호야긴(B.C.598년-B.C.597년) 1/4
 20. 시드기야(B.C.597년) 11


*
끝자리 숫자는 통치기간, ()는 통치 개월 수, 분수는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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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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