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만나기 인터넷 방송국입니다-예수만나기.한국       ( Yesu Mannagi System: seejesus.tv)



 

 

 



 

 

한 쪽 성경공부 29.ONE  PAGE BIBLE STUDY 29_Ver.8.00

김민호 목사 지음

 

다윗 계약과 선지자들

      

Diachronic synopsis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이미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경고한 대로 앗수르와 바벨론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몰락의 기운이 서서히 닥쳐오고 있었습니다.

유다 왕국은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과 아세라 사이에서 우왕좌왕 했습니다. 우상 숭배로 치닫는 왕과 우상 숭배를 개혁하고 하나님 앞에유다를 바로 세우는 왕들의 숨바꼭질이 계속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가 강성할 때 유다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는데 북 왕국 이스라엘이 B.C.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하자 유다 왕국도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이스라엘을 무너뜨린 앗수르는 유다에까지 공격해와 몇몇 성읍을 탈취하기까지 했습니다. 유다 왕국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아사,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같은 위대한 왕이 우상을 타파하고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웠지만 요시야 왕이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하자 왕국은 급속하게 쇠하기 시작했고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에 이르러 결국 B.C. 586년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그리고 70년간 바벨론 포로 생활을 지내야 했습니다.

멸망한 유다인들은 오직 다윗 계약만 바라보는데....




돌아가면서 읽기
(Reading one by one)

 

앗 ! 이럴 수가

 B.C 8 세기는 이스라엘 주변 국가 중에서 앗수르가 세력을 팽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앗수르는 디글랏 빌레셀 3세(B.C. 745-727) 때에 강력한 제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유다 북쪽에 위치한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은 B.C. 753년 여로보암 2세가 죽은 이후 북 왕국은 내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므나헴은 10년을 통치했지만 앗수르 디글랏 빌레셀 3세에게 은 1000 달란트를 주어 도움을 받아 나라를 견고히 세우려 했으며 또한 부자들에게 토색하여 은 50세겔씩 받아 앗수를 왕에게 주어 물러나게 하고 조공을 바쳤습니다. 므나헴이 조상에게로 돌아가자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이 되어 2년을 치리하였지만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여로보암의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번엔 그의 장관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브가히야를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베가 역시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악을 행하면서 20년을 통치했습니다. 베가는 강성한 앗수르에게 저항하려 했습니다. 베가는 앗수르와 대항하기 위하여 아람 왕 르신과 동맹을 맺고 또 남 유다와 동맹을 맺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유다 왕 아하스는 베가와의 동맹을 거절하였습니다. 오히려 아하스는 앗수르에 의지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는 아하스를 쳐서 파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유다의 왕으로 세우려는 의도를 가지고 연합군을 데리고 예루살렘을 침공하였습니다.(사7:6) 아하스의 마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같이 흔들렸습니다.(사7:2)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아하스에게 보내어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치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왕 베가와 아람 왕 르신의 연합은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7:7)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찌라도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사7:4)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이어가던 유다는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어야 했습니다.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라도 육십 오년 내에 에브라임1)이 패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사7:8-9)

유다 왕 아하스는 하나님의 구원의 선포를 믿고 의지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의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에게 구원을 선포하셨고, 또한 그 구원의 징조를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데서든지 높은데서든지 구하라 ” (사7:10)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을 시험치 않겠다고 징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아하스에게 구원의 징조가 보여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로 하여금 유다의 구원을 선포하시면서 세상의 구원의 '징조'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셨습니다.2)


두려움에 떠는 유다


아하스 왕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밀려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아하스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 싸우려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기기 못했습니다.
(왕하16:5)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가득한 아하스는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하고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과 금을 취해 상당한 예물을 가지고 사자를 앗수르 왕에게 보내어 말했습니다.

"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왕하16:7-8) 


  앗수르 왕 디글랏 빌데셀 3세(불,pul)은 아하스의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B.C. 733년, 그는 르신의 수도인 다메섹으로 올라와 쳐서 취하고 아람(수리아,Syria) 왕 르신을 죽인 후 그 백성을 길(Kir)3)로 사로잡아갔습니다. 앗수르 왕은 이스라엘 베가를 치고 이욘, 아벨벳마아가, 야노아, 게데스, 하솔, 길르앗, 갈릴리, 납달리 온 땅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그곳 백성들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데려갔습니다.(왕하15:29) 앗수르 왕은 아하스를 돕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아하스를 괴롭게 했습니다. 후로는 남 유다도 앗수르의 속국이 되어 무거운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대하28:20)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유다 왕국은 굳세게 서지 못했습니다.(사7:9) 아하스 왕은 디글랏 빌레셋이 르신을 친 후 그를 만나러 갔다가 앗수르 우상의 제단을 보고 제도와 식양(式樣)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 똑같은 단을 만들게 하고 전(殿) 앞, 곧 하나님의 앞에 있는 놋 번제단을  새로 설치한 그 우상의 (祭壇) 북편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왕의 지시에 따라 제사장도 배교적인 행위에 참여했습니다.(왕하16:10-16) 이러한 배교적인 행위는 하나님의 법도를 버리는 불신앙의 행위였습니다. 아하스는 이방 종교에 깊이 빠져들어 갔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멸망

  북 이스라엘 왕국은 점점 멸망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친 앗수르 파인 호세아가 반역하여 베가를 죽이고 왕이 되어 앗수르에 복종하였습니다. 호세아는 자신의 왕위 계승에 가담한 디글랏 빌레셀 3세에게 무거운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러자 B.C. 727년 디글랏 빌레셀이 죽자 호세아는 앗수르를 배반하였습니다. 호세아는 조공을 바치지 아니하고 어리석게도 애굽 왕 소(So,오소콘 4세)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디글랏 빌레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그의 아들 살만에셀 5세는 B.C. 722년 반란의 계획을 알아채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호세아를 잡아 옥에 가두고 사마리아를 3년간 공격하여 마침내 사마리아를 함락시켰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앗수르, 할라, 고산, 하볼 하숫가와 메데 사람 여러 마을로 끌고 갔습니다.4)(왕하7:6)



남 유다의 멸망

 남 유대인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B.C 722년 정복당했기 때문입니다. 온갖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저버리고 배도의 길을 갔던 아하스 왕은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목도해야 했습니다.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위에 올라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나라를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렸을 때에도 앗수르의 팽창은 계속되어 히스기야 14년에 산헤립이 올라와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치고 빼앗습니다. 이때 히스기야는 금 30달란트, 은 300달란트를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 히스기야의 선정에도 불구하고 므낫세 치세에 저질러졌던 극도의 우상숭배로 인해 여전히 유다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므낫세의 악정과 그의 회심 이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유다에 대한 진노를 돌이키지 않으셨습니다.(왕하23:26) 므낫세 이후 만연한 우상숭배를 철저히 개혁한 요시야 왕이 죽은 후 애굽과 바벨론 제국의 패권 다툼 사이에서 신음하던 유다 왕국은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을 이어 시드기야 왕 때에 유다 왕국은  B.C. 586년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쳐들어와 유다를 멸망시켰습니다. 예루살렘은 불태워졌으며 예루살렘 사면 성벽은 헐렸으며 성중에 남아 있던 백성들은 느부갓네살의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모두 사로잡아 가고 빈천한 백성들만 예루살렘에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했습니다.(왕하25:12) 

 다윗의 아들 솔로몬과 그 아들 르로보암에 의하여 계승되어 온 유다 왕국의 멸망으로 백성들은 포로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포로 생활로 고팔픈 백성들은 잃어버린 다윗 왕국의 재건을 고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다윗 언약 밖에는 기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다윗 언약에 따라 그 나라가 견고하게 세워지기를 원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새로운 왕, 다윗의 언약에 따라 그들의 왕국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실 그분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다윗에게 맺어주신 하나님의 언약의 핵심은 이것이었습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6)

유다인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약속의 성취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조상의 삶으로 돌아간 이스라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연설을 주의 깊게 듣고 마음판에 새겼어야 했습니다. 

  모세가 모압 땅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그토록 상기시켰던 ‘요단 저편 모압 땅’(신1:5)에서 들려준 신명기의 교훈을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떠나 왕과 백성 모두가 우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모압 광야에서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25. 네가 그 땅에서 아들을 낳고 손자를 얻으며 오래 살 때에 만일 스스로 부패하여 무슨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격발하면

26.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너희 날이 길지 못하고 전멸될 것이니라 27. 여호와께서 너희를 열국 중에 흩으실 것이요.........“(신4:25-27)


 이스라엘은 자신의 조상들이 “유리하는 아람 사람”(신26:5-9)이라고 고백하였듯이 다시 유리하며 방황하는 민족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유다 왕국이나 이스라엘이나 모두 우상숭배를 척결하지 못했습니다.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정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남과 북으로 나뉘고 이방 나라에 흩어져 종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않고 그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령을 거스려 듣지도 아니하고 행치도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왕하18:12) 그뿐 아니라 다른 나라 포로들을 사마리아에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이 이주 온 이방인들은 바벨론 사람들, 구다 사람들, 아와 사람들, 하맛 사람들, 스발와임 사람들 등 이방인들이 처음 들어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보내어 몇 사람을 죽이셨습니다.(왕하17:25) 이 일로 앗수르 왕은 사마리아에서 사로 잡아온 제사장을 다시 보내 벧엘에 거하게 하면서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주해온 각 민족이 자신들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 하나님도 섬겼습니다. 이렇게 사마리아에 들어온 이방인들로 인해 사마리안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유대인에게 멸시를 받았습니다. 


 

남 유다도 조상의 삶으로


 남 유다도 우상숭배에 따른 악한 행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았습니다. 남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지도 않고 고위 제사장과 백성들조차 이방의 가증한 우상숭배를 본받아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백성들은 방자하여 선지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으며 오히려 욕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였습니다.
(대하36:11-16)

  유다는 B.C 586년5) 바벨론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B.C. 605년 그의 아버지 네보폴라살에 이어 왕위에 오르자 유다를 그의 통치하에 두려고 여호야김 시대에 유다를 침략했습니다. 이 때 다니엘 외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바벨론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에게 복종하다가 애굽과 동맹을 맺으며 배신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B.C. 586년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함락 시켰습니다.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온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 성 사면을 토성으로 쌓고 그의 군사들이 성을 에워쌌습니다. 성중에 기근이 심하고 양식이 떨어지자 시드기아는 그의 군사들과 함께 성벽을 뚫고 두 성벽 사이의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쳤습니다. 여리고 평지에 이르러서 바벨론 군사들이 추격해오자 시드기아의 군사는 모두 흩어져 도망가고 시드기야는 립나의 느부갓네살에게로 끌려갔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 목전에서 그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는 눈이 뽑히고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느부갓네살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은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귀인의 집과 함께 모든 집을 불사르고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어버렸으며 성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 그리고 놋바다를 깨뜨려 가져가고 기타 성물들을 모두 약탈하여 가져갔습니다.

예루살렘 성 내 백성과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한 자와 남은 자들은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모두 잡아가고 천민만 그 땅에 남겨져 포도원지기와 농부가 되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70년간 종살이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우상 숭배로 달려간 그들의 삶의 결과였습니다.



그래도 남겨진 하나님 언약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배도의 길을 걸어가며 멸망의 길로 달려갔지만 그들에게 남겨진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행하신 약속은 이스라엘 공동체와 관련하여 두 개의 언약으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하나는 모세 계약이라고 불리는 시내산 계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렇게 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19:3-6)


 그리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십계명을 비롯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될 여러 가지 규례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율법으로 특징지어지는 시내산 계약, 곧 모세 계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잘 지킬 때 하나님께서 의무를 이행하시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학자들은 모세 계약을 <쌍방계약>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계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을 비로소 배우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의로운 뜻에 따라서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가 됨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세 계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잘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나뉘는 아픔을 맛보면서도 농경문화의 풍요를 갈망하는 삶의 현실 속에서 바알과, 아스다롯 그리고 여러 종류의 이방 신을 섬기는 어리석은 죄를 저질렀습니다. 다윗의 왕국을 이어간 유다 역시 하나님을 떠난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나라를 빼앗겨버리는 이스라엘의 엄청난 현실을 목격하였음에도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구현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유다에게 남겨진 유산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행하신 무조건 적인 다윗 언약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일컬어 “다윗 언약(Davidic covenant)”이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유다 백성들은 다윗 언약에 의지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다윗 언약의 특징은 모세 언약과 다르게 조건이 없는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다윗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무런 요구조건이 없이 하나님 스스로 은혜의 의무만 지게 된 언약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을 이 다윗의 언약을 <편무계약>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한편에서만 의무를 가진 계약이라는 뜻입니다.


영원한 언약


  어느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모든 대적들을 파하시고 다윗으로 하여금 왕궁에서 편히 거하게 하셨습니다. 그 때 다윗은 백향목 궁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휘장 가운데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불렀습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영원한 언약을 맺어주셨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나단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5.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6.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7.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8.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9.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10.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 (삼하7:5-16)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이 모든 묵시대로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곳을 정하여 이스라엘을 심고 옮겨 다니지 않게 하시며, 악한 자들에게 해를 당하기 않게 하시며, 모든 대적으로부터 벗어나 평안케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한 집을 이루시고 그의 후손을 세워 그 나라가 견고케 하고 다윗의 집과 나라가 영원히 보전되고 다윗의 위가 영원히 견고하게 세워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삼하7:1-17)

그런데 다윗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이 은혜의 언약은 아무런 조건도 없으며 또한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계약의 변화


 유다 백성들은 다윗 언약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언약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함께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될 아브라함의 언약
(창22:18,창26:4)을 성취하실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실 새로운 왕을 보내실 것이었습니다. 이 다윗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을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6-7)


이사야는 거듭 예언하였습니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사11:10)


  또한 이스라엘 왕정 말기에 활동한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 땅에 공평과 정의의 의로운 왕, 사랑과 화평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세우실 왕이 다윗의 가지로부터 나올 것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23:5-6)


  그러므로 다윗의 언약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새로운 왕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왕은 유다 왕 아하스에게 구원의 징조로 계시되었던 임마누엘의 왕이었습니다.
(사7:14)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보존하려면 새로 오시는 이 왕은 영원하신 분이어야 하므로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의 새로운 왕은 하늘로서부터 오시는 신성을 지위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구약 시대의 왕들의 통치 아래서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이 모세 언약을 지킴으로써 "스스로의 의(義)"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다면 다윗 언약에 따른 새로운 왕의 통치 아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의(義)”로 말미암아 사람들과 전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즉 새로운 언약을 맺게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6)

다윗 언약에 따른 새로운 왕이 통치하는 시대는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인 구약 시대는 하나님의 의에 의하여 통치되는 새로운 시대에 의하여 계승“7)되었음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윗 언약의 영원한 왕, 메시야

이 새로운 왕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는 이처럼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 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 (사9:1-6)


다윗의 위를 이어 영원히 다윗의 위를 견고케 하실 새로운 왕, 그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으로 불립니다. 이 다윗 언약에 따라 다윗의 왕국을 견고하게 세우실 분이 바로 갈릴리 스블론 땅, 베들레헴에 태어나실 하늘로부터 오시는 왕,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지자 이사야는 예언했습니다. 이사야가 아하스 왕에게 계시한 유다를 구원할 왕의 오심에 대한 “징조”의 궁극적인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이것이었습니다.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이 예언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왕위에 앉으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으로 잉태케 하시고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1:18-25)


 유대인의 왕으로서 이 땅에 오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이 베들레헴은 갈릴리의 스불론 땅에 있는 나사렛 북서쪽 1km 쯤 떨어진 작은 마을입니다.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은 갈릴리 바다 서남 지역과 북서 지역으로 과거 주전 732년 이스라엘의 북쪽 지역은 디글랏 빌레셀 3세 때 앗수르에 병합되어 이방인의 통치를 받은 지역으로서 멸시와 환란을 당했고 ‘이방인들의 갈릴리’라고 불려졌습니다.
8)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만민의 기호로 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흑암과 사망의 그늘진 땅에 보내심으로써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 구원의 사역의 중심은 갈리리였습니다. 가나에 첫 번째 기적,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으며, 산상 수훈을 가르치신 곳도 이 지역이었으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곳도 갈릴리였으며 또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만나주신 곳도 갈릴리였습니다. 그 멸시를 당하던 그 갈릴리는 수치를 씻고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왕위에 앉으셔서 유다9)를 구원하시고 견고하게 하려 하심은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였습니다.(행1:8)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위에 앉으심으로써 하나님의 왕권과 통치가 회복되었으며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견고하게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귀환


유다 왕국은 다시 회복되어야 했습니다. 다윗 왕국을 이어간 유다 백성들의 배교적인 삶은 70년간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해서 속죄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속죄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 빠졌던 이스라엘 백성들 고난을 통해서 새롭게 하시고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신 것이었습니다.
(렘29:11) 그리고 속죄의 기간이 차면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포로로 끌려간 유다인들에게 바벨론에서 잘 정착하고 번성하라고 명하셨습니다.


“5.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 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취하며 너희 딸로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생산케 하여 너희로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렘29:5-6)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유다인들에게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70년이 차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1) 그러므로 유다 백성들은 그곳에서 번성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유다인들에게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편지로 보냈습니다.


“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29:5-14 )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다시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니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30:3, cf. 렘30:4-31:41)


느부갓네살의 바벨론은 벨사살 왕 때에 이르러 페르시아 고레스 왕에게 점령되었습니다. 고레스는 벨사살을 죽이고 바벨론 제국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B.C. 538년 고레스 원년에 하나님께서 고레스에게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다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라는 칙령을 반포했습니다. 그렇게 불타버린 솔로몬의 성전은 새롭게 건축되기 시작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고토로 돌아와 성전을 회복한다는 것은 곧 다윗의 왕국이 회복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성전이 회복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언약"(창22:16-18)과 "다윗 언약"(삼하7:16)을 이루고 계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언약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일하고 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요5:17) 


1차 귀환

페르시아(바사)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스1:1) 고레스는 온 나라에 조서를 내려 공포했습니다.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4.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찌니라..." (스1:1-4)


 고레스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참 신이라고 고백했으며
(스1:3)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올라가지 못하고 남아 있는 백성들은 어느 곳에 우거하든지 은과 금과 물건과 짐승으로 성전을 건축할 사람들을 도와주고 예물을 즐거이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건축하면서 사용할 기명들이 필요했는데 과거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자기 신들의 당에 두었던 금반 30 은반 1,000, 칼 29 금대접 30, 은대접 410, 기타 기명이 1,000, 곧 5,400개10)의 금은(金銀) 기명(器皿)들을 고지기 미드르닷에게 명하여 유다 목백(牧伯) 세스바살에게 붙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그 모든 기명들을 가져가도록 했습니다.(스1:1-11)
이 고레스 원년 B.C. 538년에 스룹바벨의 인도로 1차 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돌아온 사람들이 49,897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본성에 거한지 7월
12) 예루살렘에 이른지 2년 2월, 주전 536년에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 그리고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성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솔로몬의 성전을 보았던 노인들은 새로 지을 성전의 지대가 놓이는 것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습니다. 또 한 무리는 기뻐 즐거워하였는데 멀리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즐거이 부르는 소리인지 통곡하는 소리인지 분별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감격 속에 진행된 성전의 재건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적들13)이 일어나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방해로 성전 건축은 다리오 왕 2년, 주전 520년까지 연기되었습니다.
  그러한 반대 속에서도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거하는 유다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예언하자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일어나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선지자들도 함께 도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 및 그 동료들이 성전 재건을 반대했습니다.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시리아 지역을 관장하는 페르시아 총독 닷드내는 유다인들이 진행하는 성전건축이 누구에 의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당시 페르시아 왕 다리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스4:11) 그리고 과연 유다인들이 주장하는 대로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성전을 건축하는 것인지 아닌지 그 여부를 알아보기 위하여 바벨론 왕의 국고에서 조사를 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다리오 왕은 조서를 내려서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곳을 조사하였습니다. 그리고 메대의 수도 악메다(Ecbatana, 오늘날 Hamadan)에서 고레스 왕의 조서가 발견했습니다. 그 조서에서 다리오 왕은 유다인들의 성전 재건 역사를 방해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고
(스6:10) 강 서편의 세금으로 성전 건축소요 비용에 대하여 경비를 지급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다리오 왕은 자신의 조서를 변개하지 못하도록 엄하게 경계했습니다.(스6:11-12)
 
이리하여 새로운 성전은 고레스 왕 때에 주전 536년에 시작되어 다리오 왕 주전 515년에 왕공되었습니다. 21년간에 걸쳐 성전이 재건되자 백성들은 봉헌식을 올렸으며 정월 십사일 유월절을 지키고 또한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2차 귀환

이 일 후 B.C. 458년 에스라에 인도 하에 이스라엘의 두 번째 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스7:7) 다리오 왕이 주전 486년에 죽고 그의 아들 아하수에로 왕(크세르크세스)이 주전 485년부터 주전 465년까지 20년간 제국을 다스리고 그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닥사스다 왕이 주전 464년부터 주전 424년까지 40년간 다스렸습니다. 이 아닥사스다 왕 때에 왕에게  구하는 것 마다 모두 받을 수 있었던 왕의 총애를 받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였습니다.(스7:6) 

  하나님께서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아름답게 하려는 소망을 주셨습니다.(스8:27) 아닥사스다 왕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명하신 바가 실행되도록 하기 위하여  바벨론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중에서 뜻이 있는 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도록 에스라에게 조서를 내렸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조서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2.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13. 조서하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을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찌어다..
."(스7:12-13)

아닥사스다 왕은 왕의 내탕고에서 취하여 하나님의 전에 쓰일 것에 있어서 드리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져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스7:20) 그리고 강 서편 모든 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려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가 구하는 것은 신속히 시행하라고 했습니다. 은은 100달란트까지, 밀은 100고르까지, 포도주는 100 밧까지, 기름도 100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수(定數)없이 하도록 허락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노래하는 사람들, 문지기, 다윗과 방백들이 레위 사람들을 수종들게 하였던 느디님 사람들(스8:20) 등에게 조공과 세금을 받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때 에스라의 인도하에 많은 유다인이 귀환했습니다. 비느하스 자손 중에서 게르솜, 이다말 자손 중에서 다니엘, 다윗 자손 중에서 핫두스를 비롯하여 스가냐 자손 중에서 스가랴, 바핫모합 자손 중에서 엘여호에내 및 그와 같은 두령 18명과 그에 딸린 사람들 까지 1,514명 그리고 후에 소집된 레위인 258명 1772명이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온 것을 추산하면  4~5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귀환했습니다.
14)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말씀대로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를 결심한 에스라의 인도로 귀환한 두 번째 사람들은 선조들처럼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에 따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예배를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성전은 건축되었고 제사도 드릴 수 있게 되었지만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그들의 삶의 자리는 에스라가 겉옷과 속옷, 머리털 과 수염을 뜯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회개와 개혁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타락한 상태였으며 이방 국가의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과 통혼할 뿐만 아니라 이방 신의 제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가나안, 헷, 브리스, 여부스, 암몬, 모압, 애굽, 아모리 사람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와 며느리를 삼고 그들의 가증한 일들을 일삼고 이방 족속과 섞이게 되었는데 과거의 북 이스라엘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 일에 방백들과 두목들의 죄가 더욱 중하였습니다.
  에스라는 종교 개혁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서 엎드려 울며 기도하고 죄를 자복할 때 백성들이 모여들었고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그러자 남자 여자 및 어린아이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이방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언약을 세우고 맹세하여 율법대로 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하여 에스라에게 개혁을 요청했습니다.
(스10:4)
  구월 이십일, 에스라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갔던 유다 백성들의 자손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하나님의 전 앞 광장에 모여 앉았습니다. 그 때 큰 비가 내렸습니다. 그들은 "이방 여자로 아내를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한"
(스10:10) 죄를 자복하고 이방 여인을 끊어버리기로 확약하였습니다. 에스라는 족장 몇 사람을 지명하여 시월 초하루에 조사를 시작하여 정월 초하루에 이르러 이방 여인을 취한 자에 대한 조사를 마쳤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열방의 왕들의 손에 자신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신 것을 뉘우치고(스9:7) 또 긍휼을 베풀어 유다와 예루살렘에 울타리를 만들어 소성하게 하신 하나님 기억하면서(스9:9) 모두 회개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인 각성과 회복을 다시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느헤미야의 귀환


하나님께서는 주전 444년 세 번째의 느헤미야의 귀환을 허락하셨습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1세 롱기마누스, B.C.464-424) 왕 재위 20년 주전 444년에 술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이 한 사람의 귀환은 짧은 시간에 총독으로 시무하면서 성벽을 재건하고 삶의 자리를 개혁하는 등 많은 일들을 수행했습니다.
 어느 날 느헤미야의 형제 가운데 하나니가 사람들과 함께 유다에서 느헤미야에게 왔습니다.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하여 물은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고 또한 성벽은 모두 훼파되어 성문이 불탔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에게 요청했습니다.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느2:5)


왕은 즐겨 허락하고 강 서편 총독들에게 조서를 내려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고 왕의 삼림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려 영문의 문과 성곽 그리고 느헤미야가 거할 집 지을 들보 재목을 사용하도록 허락하고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장교들과 기마병의 호위를 받으면서  유다로 돌아왔습니다. 강 서편 총독에게 왕의 조서를 전달하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밤에 몰래 두어 사람과 함께 성벽을 조사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다 무너졌고 성문은 모두 불에 타버렸습니다.
느헤미야는 제사장들, 귀인들, 방백들 외 유다 사람들에게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도록 중지를 모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신 일, 그리고 왕이 자신에게 이른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성을 건축하자고 일어났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그 형제 제사장들은 양문과 그 문짝,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벽을 건축하며 성별하였습니다.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옛문, 골짜기 문, 분문, 샘문, 수문을 지나 마문, 동문 함밉갓문 그렇게 다시 양문에 이르기까지 예루살렘 성벽은 그렇게 재건되었습니다.
15)
  그렇지만 이 성벽 재건도 수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은 유다인들이 성벽을 재건하지 못하도록 심리전술을 폈습니다. 조롱을하고, 반역죄로 몰아붙이고, 미약한 유다인에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심리전을 폈습니다. 암몬 사람 도비야도 거들면서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질 것이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성벽 재건을 완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산발랏과 도비아,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성전이 보수되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심히 분히 여겨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의 사람들은 절반은 성벽 재건에 역사하고 또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들고 대적의 공격을 대비했습니다.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성 안에서 자고 밤에 파수하고 낮에는 역사하였습니다. 그들은 옷을 벗지 아니하였고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고 성전 재건에 전력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흉년이 있어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 20년 (주전 444년)에서부터 32년(주전 432년)까지 12년간 유다의 총독으로 봉사했는데 그는 동족으로부터 총독의 녹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토색하지 않았고 느헤미야의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지 않았습니다. 느혜미야는 백성에게 짐을 지우지 아니한 참으로 신실한 지도자 였습니다.
대적들의 음모는 더 치밀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나머지 대적들이 아직 성문을 달지 못한 때에 느헤미야를 해치려고 오노 평지 한 촌에서 만나자고 제의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계략을 알아차렸습니다. 산발랏 일당의 대적들은 인봉되지 않은 편지를 느헤미야에게 보냈습니다. 그 편지에 느헤미야가 모반하여 유대인의 왕이 되려 한다고 쓰고 이것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알려지게 될 것이라고 위협하였습니다. 또한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에게 뇌물을 주어 거짓 예언을 하고  성전 외소에 숨어 문을 닫도록 유혹하고 산발랏의 암살로부터 몸을 지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유혹하여 율법에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성전에 느헤미야가 들어가도록 하고 비방거리를 만들어 비방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그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성 재건에 전력했습니다. 성 재건의 역사는 52일 만에(엘룰 월 이십오일)에 끝났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7월 1일에는 수문 앞 광장에 모두 모였습니다.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져나와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들에게 깨닫게 하였습니다. 7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8일에 성회를 열었습니다. 그달 24일에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했습니다. 예수아, 바니 갓미엘,스바냐 등과 같은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며 홍해를 갈라 마른 땅과 같이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신들의 죄악들에 대하여 회개하라고 요청하였습니다.

"35. 저희가 그 나라와 주의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한고로 36.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삽는데 곧 주께서 우리 열조에게 주사 그 실과를 먹고 그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종이 되었나이다"(느9:35-36)


백성들은 율법의 조항들을 기록한 언약서에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모두 인을 쳤습니다. 그 언약서에는 가나안 인들과 통혼 금지, 안식일 및 안식년 준수, 성전세 1/3 세겔 준수, 진설병, 항상 드리는 소제, 번제, 절기 등에 사용될 것들을 드림, 번제에 사용할 나무를 제공, 곡식의 첫 수확 및 가축의 첫 태생, 장자를 드림, 매년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줌, 레위인들은 받은 바 십일조에서 십일조를 제사장과 문지기, 노래하는 자들을 위하여 줌 등에 대하여 기록하고 인을 치고 하나님 앞에서 언약하며 이처럼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느10:39)



예루살렘에 다시 모이는 유다인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면서 훼파되고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 적은 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이 재건되고 성벽이 복구되자 더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었습니다. 에스라는 인구를 정리했습니다. 에스라는 백성들의 1/10을 제비로 뽑아 예루살렘으로 이주시켰습니다. 그리고 자원하여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원했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백성들은 그들을 위해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제사장, 레위 사람 느디님 사람들,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들은 예루살렘 밖 성읍에서 거주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제사장과 레위인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출근하기도 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그 도의 두목들이 정착했는데 유다지파 468명, 베냐민 지파 928명, 제사장이 1,192명 레위인이 284명 그리고 문지기들이 172명으로서 모두 3,044명이었습니다.
16) 그리고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유다 모든 성읍에 흩어져 각각 자기 기업에 거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낙성되자 레위 사람들을 찾아다가 예루살렘에 데려와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을 정비하여 세력을 강화시켰습니다.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을 따르도록 하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에 일을 맡겨 성전의 기능을 회복시켰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12년간의 총독으로서 성과 성벽 재건을 완수하고 바벨론으로 돌아가 아닥사스다 왕을 섬겼습니다.   그가 후에 주전 430년경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쩐 일인지 백성들의 영적 상태는 더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성벽 재건을 방해했던 도비아를 위해 성전 안에 큰 방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방은 소제물과 유향과 기명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었습니다.(느13:5) 그러니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은 생계를 위해 전리도 도망하고 성전은 버린 바 되었습니다.(느13:11) 안식일은 지켜지지 않았고 유다 사람들은 이방인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맹세(스10:30)를 어기고 아스돗, 암몬, 모압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습니다. 심지어 제사장들 초차 인방인과의 통혼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대제사장의 엘리아십의 손자는 산발랏의 딸고 결혼하여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를 내어 쫓아내었습니다.(느13:28) 그러므로 다시 한 번  느헤미야는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신의 일을 수행하도록 성전의 제사의 기능을 회복시켰으며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소산을 하나님께 드리게 하는 등의 일련의 영적 개혁을 다시 이룩했습니다.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이니이까?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 유다인들에게 1, 2차 예루살렘 귀환이 이루어졌지만 독립된 국가로 회복된 것은 아닙니다. 그 후로도 조상들이 그랬듯이 2500 여년 이상 열방에 흩어져 디아스포라
17)로 살아왔습니다.

   이스라엘의 국권은, 앗수르, 또 바벨론에게로 넘어간 후에, 이스라엘은 또다시 페르시아, 헬라,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열강의 지배 속에서 고대사회를 보냈습니다. 나라 없는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다윗 언약에 기대어 이방 나라로부터 독립된 국가가 세워지길 고대했습니다. 그러한 고대는 다윗 언약에 따른 새로운 왕이 오셔서 이루어주실 것이므로 그들은 메시야를 더욱 갈망하게 되었고,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열망이 얼마나 간절했던 것인지는 현대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메시야가 오시기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은 상태에서 여전히 정치적으로 자신을 구원해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의 일입니다. 예수께서 성령 강림을 약속하시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강림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회복의 맥락에서 예언되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이까?”(행1:6)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의 나라” 즉 이스라엘의 회복과 성령의 강림이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은 바른 판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다분히 지상적으로 회복될 것을 기대하며 살아왔습니다.(눅9:46,22:24) 고대부터 지상 국가의 회복을 갈망해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열망은 19C 후반에 이르러 시오니즘(Zionism)으로 구체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시오니즘이란, 이스라엘이 그들의 잃어버린 가나안 땅, 즉 팔레스타인에 조국을 재건하려는 독립운동을 말합니다.

오스트리아 저널리스트 T.헤르츨에 의해 시오니스트 회의가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된 후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시오니즘이 재 주창되었습니다. 그리고 1917년 11월 2일 영국으로부터 팔레스타인 내의 유대 민족국가 건설에 대한 영국의 지지를 약속하는 밸푸어선언이 있은 후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의 도시 및 농촌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정착이 확대됨에 따라서 아랍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커지자 영국은 미국과 상의하고 유엔연합에 일임하였습니다. 1947년 10월 27일 국제연합은 팔레스타인을 아랍 국가와 유대 국가로 각각 분할할 것을 제안함으로써 1948년5월 14일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에서 한 국가로 성립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아랍과 이스라엘 간에 독립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이 전쟁을 치루기 위하여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다 버려두고 이스라엘로 모여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독립전쟁을 치른 후에 국가를 세울 수 있었는데, 지상에서 이스라엘 국가의 지상 회복은 1967년에 아랍과의 3차 전쟁(6일 전쟁)에 승리하여 영토를 확보함으로써, 20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이루어졌습니다.





 

1)에브라임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을 지칭한다. 요셉이 애굽에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장자는 므낫세이고 차자는 에브라임이었다. 야곱은 장자 르우벤이 야곱의 첩 빌하와 통간했기 때문에 그의 장자권은 요셉에게 주어졌다.(대상5:1-2) 그리고 야곱이 애굽에서 요셉을 만났을 때 그의 손자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축복하였는데 이때 오른 손을 에브라임 머리 위에 왼 손을 므낫세 머리 위에 얹고 축복했다. 그리고 에브라임이 므낫세 보다 크게 되리라고 축복했다.
솔로몬의 왕국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뉜 후 북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은 에브라임 지파의 여로보암 1세였다. 또 그를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선지자 아히야 역시 에브라임 지파였다.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지를 에브라임 지파 성읍인 벧엘과 단으로 정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게 하였는데 에브라임은 북 왕국의 중심 세력이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북)을 에브라임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처럼 같은 지명, 인명을 서로 다른 두 개의 이름으로 부르는데, ‘야곱아 이스라엘아’, 또는 ‘시온아 예루살렘아’처럼 이스라엘(북)과 에브라임을 같이 부른다.

 

2)
선지자들의 예언들은 대부분 이중구조로 되어있다. 그 예언은 당대 또는 가까운 시간 안에 성취되지만 그 예언은 미래에 종말론적으로 다시 한 번 성취된다. 아하스에게 예언한 이사야의 예언은 이스라엘 왕 베가와 아람 왕 르신의 연합군이 유다로 올라와 예루살렘을 에워쌌지만 아하스 왕을 이기지 못했다.(왕하16:5) 아하스는 이사야의 예언의 징조(사7:14-16)가 성취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이때 계시된 유다의 구원의 약속으로서의 ‘임마누엘’의 징조는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세상의 왕,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궁극적으로 성취되었다.
  이때 아하스는 하나님께서 유다를 구원하여 주실 것이라는(사7:4) 이사야의 예언을 믿지 못했다.  결국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 이로 인해 아하스가 삯을 주고 얻은 앗수르 왕의 용병으로 인해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은 성취되었다.(사7:20) 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도움을 받아 아람을 멸망시켰으나 이후로 앗수르의 속국이 되었으며 조공을 바쳐야 했다.

아하스 왕 때 계시된 임마누엘의 '징조'는 다윗의 자손 요셉에게 주의 사자가 나타나 메시야의 잉태를 예고하면서 성취되었다.(마1:18-25)


3) 길(Kir)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한 한 지역이나 성읍으로 수리아 인들의 조상이 아람에 정착하기 이전에 살고 있었던 곳이다.(암9:5)
 

4) 
살만에셀 5세는 사마리아를 3년간 에워싸고 공격하고 B.C. 722년 마침내 점령했다. 그러나 그는 그해 죽었다. 그의 후계자 사르곤 2세는 B.C. 720년에 다시 사마리아 성을 정복하고 사마리아 사람들을 앗수르로 끌어갔다.


5) 이스라엘 멸망은 ,B.C. 586년 또는 587년으로 보는데 시드기아 왕 11년 4개월째(왕하25:1-7) B.C. 586년으로 본다.


6)
(Anders Nygren, Commentery on ROMANS,p145,146 Traslated by CARL C. RASMUSSEN, MUHLENBERG PRESS,PHILADELPHIA,1949)


7)Ibid., p147


8)John A. Martin, Bible knowledge commentary , 이사야, p63, 두란노

9)유다(Judah)

유다는 원래 분열왕국 시 팔레스타인 남쪽 지역을 의미한다. 이러한 유다는 바벨론 포로 이후의 유다인들의 국가를 이야기 할 때 유대(Judea)라고 부르는데 이는 유다의 헬라어 또는 라틴어 형태로 불려지는 말이다. 유다의 영토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축소 확대되었지만 결국 유대는 유다의 연속선상에 있다.


10) 에스라 1장 9-10절에 기명들의 수가 2,499개인데 총 합의 수는 5,400개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중요한 기명들의 수를 기록하고 기타 기명들을 모두를 세어 합한 숫자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11)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편지로 써서 바벨론에 포로 잡혀간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들에게 보내었다.(렘29:1)

12)
귀환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떠나 온지 7개월째 인지 아니면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로 7개월째 인지 확실하지 않다.


13) 대적들:

이 사람들은 신약성경의 사마리아 사람들의 선조들로서 앗수르 디글랏 빌레셀 3세의 아들 살만에셀 5세가 북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그해 그가 죽자 그의 동생 사르곤 2세가 B.C. 720년 사마리아 성을 다시 정복하고 사마리아 사람들을 앗수르로 끌고 갔다. 그리고 앗수르는 정복지의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서 다른 민족들과 통혼하도록 했다. 그리고 다른 민족의 백성들을 정복지로 이주시켜 통혼하게 하였다. 사르곤 2세와 그의 아들 산헤립에 의해 사마리아로 이주 된 사람들이 있었으며, 산헤립의 아들 에살핫돈 때에도 사마리아로 이주한 이방인들이 있었다(느4:2) 그들은 사마리아에 들어와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다. 그러나 에살핫돈은 이주민들 고유의 전통을 유지하도록 했고 이주민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자신들의 신을 함께 섬겼다. 이 이주민들의 종교의 성향은 혼합 종교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정착한 이주민들의 후손은 신약 시대의 사마리아 인들로서 유대인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이 사람들은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유다인들이 성전을 재건할 때에 대적이 되어 성전 재건을 방해하기 시작했는데(스4:4) 이 사람들은 유다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정착하는 것을 방해했다.

14)Ibid., p51

15)느3:1~32, 느헤미아 3장에 각각의 성벽과 성문을 건축한 지파와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16)역대상 기자가 기록한 수와 차이를 보인다.

17) 디아스포라

바벨론 포로 이후 다른 나라를 향해 팔레스타인 밖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을 말한다. 앗수르에 멸망한 북이스라엘 사람들, 그리고 바벨론에 멸망한 유다 왕국의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면서 팔레스타인 밖에서 정착한 것이 주요 요인이 되었다.


 


 

13/29

Information


       [지도보기]
    
   [해답보기]
        [구약대문]
       
[신약대문]   

 
      TO PRINT CLEANLY

   

[ PDF 본문_견본보기 ]
 

 
 

~Sponser~

 












 

 

 

 

 

 

 

 

 

 

 

 

 

 

 

 

 

 

 

 

 

 

 

 

 

 

 

 

 

 

 

 

 

 

 

 

 

 

 

 

 

 

 

Information

       [지도보기]
    
   [해답보기]
        [구약대문]
       
[신약대문] 

  
  TO PRINT CLEANLY

 

~Sponser~











 

 

 

 

 

 

 

 

 

 

 

 

 

 

 

 

 

 

 

 

 

 

 

                       

본문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10장-11장- 12장- 13장-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 20- 2122- 23-24-25- 26- 27-28장-29장

SJ_ 20030808_r2011007481_201207150000_T13_ver_8.00A

서울 도봉구 창동 299번지 상아 1차 아파트 상가 2층/ 방송부 070-4149-7373, 사업부 070-4149-7374 
Copyrights
©2012  www.예수만나기.한국 All right reserved. e-mail : air@seeJESUS.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