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이야기_4/29장     
 한 쪽 성경공부 29_ OBS29, 성경공부 리더들을 위한 해설) 입력: 2015.2.24

 

 

 

 



[내 생각 말해보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 가나안 /
 롯의 선택 / 소돔과 고모라 사람의 타락/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셨나요?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성도 여러분들이 한 번 고민해보시죠.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이유에 대하여  ...
  아브람은 데라의 아들로서 갈대아 우르에 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데라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아브람과 며느리 사래(사라), 그리고 셋째 아들 하란의 아들, 곧 손자 롯을 데리고 우르를 떠나 하란(지명)에서 기거하였습니다. 데라가 그곳에서 205세를 향유하고 죽었는데 그곳 하란에서 아브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창12:1) 
 
그 부름의 이유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이렇게 설명해줍니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18:18-19)
 
여기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약속하신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아브라함에게 확인시켜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민이 복을 받고 하나님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아브라함을 택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후손, "아브라함의 씨"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義)와 도(道)를 행하도록 하시려고 하셨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이유를 창세기 3장 15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천한 만민이 복을 받을"약속을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었고 타락했을 때 죄악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첫번째 약속  때문입니다. 즉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여 죄로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할 길을 여시기로 이미 작정하셧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죄로 인간을 사망으로 빠뜨린 사탄의 궤궤로부터 인간의 그 죄를 청산하고 다시 구원시키실 계획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노아 때에, 온 땅의 사람들이 패악하고 악하여 하나님께서 홍수로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신 후,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 가운데 아브람(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죄로 인해 사망에 처한 인생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자의 후손 곧, "아브라함의 씨"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시고, 인간의 구원의 구속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입니다.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처럼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22:18)
 
 
 2. 가나안
     
가나안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성경이 이야기하는 가나안은 구약의 이스라엘과 뗄 수 없는 약속의 땅, 그 약속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그 약속의 땅 가나안은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때에 그의 아들들이 들어가게 되고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가나안 땅에서 정착하게 됩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서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이 살아가는 땅이었습니다.  가나안은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각각의 족속들은 각기 자신들의 신들을 숭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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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 지방의 도시들이 그랬듯이 가나안도 우상숭배의 도시들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에게 중요한 신은 창조자로서 엘, 그의 아들 바알과 그의 아내곧, 아낫, 아스타르테, 아스다롯과 동일시 되는 아세라가 숭배되었는데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종교 의식가운데 술취함과 종교적 음행, 곧 성적행위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매우 위험하고 가증스러운 땅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그러한 가증스런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께서 내어 쫒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땅을 주신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이 살아가던 이 땅에 고대 근동에 대 격변기였던 13세기경 지중해 해안을 따라 이주해와 산간지역을 점령한 블레셋이 자리를 잡았고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대부분의 땅을 점령하므로서 가나안의 역사는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 가나안 땅에서 이전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우상숭배에 빠져들자 이스라엘도 B.C721년 북이스라엘, B.C 586년 남유다 왕국이 각각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당해 흩어지면서 디아스포라가 되었습니다. 블레셋도 남유다 멸망전 B.C 604년 바벨론에게 정복당해 블레셋 사람들을 타국으로 이주시킴으로써 블레셋의 역사도 끝나게 되었습니다.
 
 
 3. 롯의 선택
 
    선택에 관한한 아브라함의 선택과 롯의 선택은 서로 대조되고 비유되는 선택입니다. 선택이 곧 믿음의 결과임을 보여주는 것인데 성도 여러분들도 믿음의 결과 선택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선택과 롯의 선택의 속성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선택 앞에서 저울질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순간의 선택이 커다란 결과를 자신에게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아브라함과 롯의 선택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애굽에서 올라올 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아브라함은 벧엘과 아이 사이에, 전에 장막을 쳤던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이전과 다르게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어야 할 정도로 그들은 부유했고 소유가 많아 동거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때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있었습니다.(창13:7) 그래서 각자 자신의 땅을 개척하기 위해 나뉘어져야 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눈 앞에 펼쳐진 땅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13:9)
 
선택권을 롯에서 넘겨주었습니다. 롯이 바라본 요단 온 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창13:10~11)
 
롯의 결과는 이미 공부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선택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의 선택이었고, 롯의 선택은 눈에 보여지는 가능성에 대한 선택이었습니다. 인생의 앞날을 볼 수 없는 우리들은 인간의 앞날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 맡기는 선택을 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이라고 이야기 하는 "요단 들"과 같은 가능성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에 맏기는 믿음 사이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선택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4.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타락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타락의 내용과 정도는 어떤 것일까요? 소돔 사람들의 타락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무관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들의 타락의 모습은 우리가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소돔 사람들의 타락의 모습은 창19장에 나타나고, 고모라는 소돔과 함께 하나님께서 멸망시킨 도성으로서 그곳도 의인이 없는 도성이었습니다. 이 성들의 타락의 양상은 성적인 타락에 의해 조명되고 있습니다. 롯에게 나타난 소돔 사람들은 포악한 사람들이었으며 또한 성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동성애가 만연한 사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롯과 소돔 사람과의 대화를 지켜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NIV 성경은 소돔사람들이 롯의 집에 찾아온 천사를 요구하는 부분을 아래와 같이 번역했습니다.
 
"They called to Lot, "Where are the men who came to you tonight? Bring them out to us so that we can have sex with them."" (창19:5) -"그들이 롯에게 소리질렀습니다. '오늘 밤 네게 온 그 사람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을 우리에게로 데려오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려 하노라 -필자,역 "
 
 오늘날 전 세계는 동성애를 합법화화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습니다. 다원화 사회에서 소수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이 명분이지만 다분히 정치적으로 표를 얻기 위한 정책적 결정의 결과 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노력들은 교회 안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카톨릭 교회는 동성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동성애를 교회에서조차 허용하려는 움직임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으로서 정죄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정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크리스천포스트가 2015.5.20 미국 연합감리교 연대사역협의회가 성직자가 동성결혼식에 주례를 서고 지방연회가 동성애자를 성직자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보도 했습니다. 다른 이와 마찬가지로 성직자도 동성애를 허용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인본주의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2015.5.24일 동아일보는 AFP통신 보도에 따라서 현지시간 23일 아일랜드에서 동성결혼을 위한 국민투표에 대해 "아일랜드는 전날 동성결혼 합법화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진행했으며 찬성투표 비율이 전체의 62.07%에 달했고 반대는 37.93%에 그쳤다. 이날 공식 발표와 방송사의 최종 투표 결과가 나오자 더블린궁에 모인 약 2000명의 사람들은 환호했다. 일부 사람들은 포옹과 키스를 했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외신은 전했다."라고 귀띔했습니다.

 

 
소수계층에게 성적자유를 주는 것이 매우 인간적인 것으로 느끼려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악은 불과 유황의 형벌에 해당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들의 양심은 점점 더 무뎌져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동성애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6월 9일과 28일 서울광장에서 예정된 동성애 축제(퀴어문화축제)와 퍼레이드 " 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 도시의 상황으로 복구되고 있습니다.
  종말의 시계는 매우 가까와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성적타락의 시계가 새벽 12시였다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소돔시계는 몇시일까요? 저녁 11시 45분?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눅7:27~30)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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