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쪽 성경공부 29_ OBS29, 성경공부 리더들을 위한 해설) 입력: 2013.08.14 수정 : 2013.08.15 19:23
= 성령님께서 평신도를 깨우시다
THEME_a :[내 생각 말해보기]
베드로의 설교와 스데반의 설교/ 평신도 사역자/ 초대교회의 모습과 우리교회의 모습/
1. 스데반의 설교와 베드로의 설교
성경의 인물들이 설교한 설교 가운데 필자의 머리 속에 잔잔한 감동으로 기억에 남는 설교가 있는데 그것은 스데반의 설교입니다. 그는 사도가 아니었으며 7집사 가운데 한 집사로서 평신도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이었고(행6:8) 변론의 능력을 소유한 성령의 사람(행6:10)이었습니다. 그가 성령의 충만함으로 표적을 행하기도 했으니 위대한 평신도 사역자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각 회당(이 회당 사람들은 포로나 노예에서 해방된 자들이거나 그러한 사람들을 조상으로 둔 사람들로 구성된 일명 자유인의 회당 사람들로 추측됨)에서 스데반이 변론할 때 회당 사람들이 스데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는 신성모독죄로(행6:11) 고발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 파괴 될 것을 예고 하신 적이 있는데 회당 사람들은 거짓 증인들을 세워 사실을 왜곡했는데(행7:12-14),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을 헐어 버리고, 또 모세의 규례를 고치겠다고 스데반이 말했다는 이유로 스데반을 고발하여 공회에 세웠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71인 모두가 스데반의 말하는 바를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스데반을 향하여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냐"(행7:1)
이때 스데반은 그들을 향하여 메소보다미아를 떠나 하란으로 온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서 아브라함에게 내려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신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명쾌하게 설교했습니다. 또 스데반은 "의인이 오시리라"라고 예고한 자(선지자들)들을 그들의 조상이 죽였고 그들의 자손인 유대인들이 "그 의인(예수 그리스도)"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행7:52)라고 예언의 성취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설교하고 순교한 성도였습니다.
그가 그 설교를 마치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우편에 서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7:56)
그런데 그가 순교하기 전에 보여준 이스라엘의 역사를 꿰뚫는 설교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필자는 고등부 전도사로 있을 때 스데반의 설교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설교시간에 스데반의 설교를 문자 그대로 100% 동일하게 스데반이 되어 연설한 기억이납니다. 오순절 이후 성령께서 이 땅에 임하신 후 사도들과 함께 평신도들 또한 성령님에 붙들려 얼마나 위대하게 쓰임받고 있는지를 스데반의 자리에서 똑같이 설교해 보면 그러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데반 설교와 함께 기억되어지는 설교는 베드로의 설교인데 왜냐하면 베드로의 설교는 그가 어부로서 학문이 없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이 학문없는 어부출신의 베드로의 설교는 한번 설교에 3000명이나 회심시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했습니다.(행2:14-41) 오순절날 성령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신 이후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성령시대로 돌입했습니다. 그러므로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서 우리는 성령께서 평신도들을 흔들어 깨우시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2. 평신도 사역자
오늘 교회는 초대교회 이후 여전히 평신도 사역자들의 활동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평신도는 사도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며, 항존직도 아니지만 다양한 직업과 삶의 자리에서 성령을 받은 신자로서 놀랍게 사역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현재의 시대는 과거와 같이 집단에 대한 단일 커뮤니케이션이 힘든 삶의 자리인 것같습니다. 다양한 직업, 다양한 분야, 다양한 세계에 자신들의 취향대로 흩어져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그들만의 자리를 서로 침범하기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복음이 천국 복음이 전파되는데 각자의 자리에서 스데반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는 멋진 사역자가 될 수 있어야 할 것같습니다.
성도님들은 봉사자와 평신도 사역자에 대하여 각자 기준을 정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스스로 설명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봐도 봉사자와 사역자는 다른 것 같은데 그 한계와 구분이 정확해 진다면, 평신도 사역자들은 사역자다운 사역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부에 모인 성도들의 의견을 모으시고 인도자가 그 결과를 취합해서 결론을 맺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진행자를 위한 필자의 참고발언: 필자가 찬양세미나 인도할 때 찬양사역자들과 토론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찬양사역자 여러분 찬양팀에서 봉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 그랬더니 절반 정도가 손을 들었습니다. 손을 안든 단원들에게 왜 안들었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찬양 사역자는 봉사자가 아닙니다. 찬양팀에서 보컬, 기타, 베이스, 피아노, 신디사이저, 연출, 등등의 역할을 맡았다고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지요? 가끔 바쁘면 빠지고, 지각하면서 그래도 교회에서 봉사한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으쓱하지요?
봉사란 우리 집사님들께서 집에서 애낳고 살림살이하고 할일 다한 후에 남는 시간에 교회에 와서 하는 것이 봉사입니다." 라고 했더니 청년들이 와~ 끼득거리고 박수치고 하이파이브하고 난리부렸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사역자란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하면서 시간을 내고 만들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사역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상상에 맡깁니다. 여러분들이 평신도 사역자의 기준에 대하여 잠시 토론해보시면, 정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3. 초대교회의 모습과 우리 교회의 모습
초대교회는 분명 현대교회와 같이 대형교회의 모습을 하지 않았으며 교회 형성의 초기였으므로 가정교회로부터 시작한 초대교회의 모습은 현재 우리 교회의 모습과 많이 다를 것같습니다. 현대 교회는 많이 성장했고 그 크기와규모는 엄청나기도 합니다. 큰 교회는 큰 교회로서의 사명이 있고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로서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교회로서 공통적인 요소가 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라는 슬로건을 우리는 자주 대하게 되는데 이것은 현대교회가 초대교회의 초심을 잃어버렸다는 뜻일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습 가운데서 바울의 가르침이 중요한데, 먼저 교회는 교회와 교회 사에에서 구별이없다는 것이 특징입니다.(고전1:2, 롬16:1,4,16) 그런데 현대 교회는 큰 교회와 작은 교회 사이에서 신자들이 구분을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교회는 하나입니다.(고전10:32,12:28,14:14) 그래서 사도신경에서는 catholic church라고 부릅니다. 이 catholic의 의미는 보편적이란 의미를 나타내는데 catholic church를 일반인들이 구교, 카톨릭교회를 Catholic church라 부르기 때문에 혼동하여 현재 이 말을 universal church라고 고쳐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사도신경에서 the holy universal church라고 표기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엡4:12,15) 하나님의 성전(엡2:21-22), 하나님의 집(엡2:19), 특이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엡5:25)라고 지칭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속에서의 인간의 삶은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사람들은 경제정의를 부르짖기도 합니다. 초대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제자들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매일 과부들의 구제가 이루어졌습니다.(행6:1-2) 또한 사도 바울이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헌금을 제안했던 바가 있습니다.(고전16:1-4),
이처럼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제가 헌금의 주요한 사용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내부적으로 가난한 형제들을 위하여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살피는 일에 적극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마6:3) 그리고 헌금이 가난한 지역 주민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할 일이 많겠지만 왠지 헌금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를 위해서 사용한다는 교회의 이야기가 들려올 때면 너무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도님들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이렇게 묻고나니 사랑과 전쟁의 사회자가 "지금 당신의 가정은 행복하십니까?"라고 묻는 말이 생각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