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와 죄로부터의 자유의 복음_26/29장     

 


한 쪽 성경공부 29_ OBS29, 성경공부 리더들을 위한 해설) 입력: 2013.08.21 수정:2013.08.22 15:33  
 

= 율법의 무게, 복음의 무게 얼마나될까?

 


 
 
    THEME_a :[내 생각 말해보기]   
 
 하나님 없이 사람이 의롭게 되는 법/ 율법의 무게/ 복음의 무게/ 사람은 누구에게 인정받아야 하나/
 
     
 1.하나님없이 사람이 의롭게 되는 법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믿음과 신념이 있는데 때로는 그 무신론자들의 생각도 하나의 믿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과 신념이 완고해서 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하지 않습니다. 이분들은 하나님 없이 자신들이 의롭게 살아가려고 힘쓰고 또 자신의 의에 도달하려고 합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는 것인데 인간의 의지에서 나오는 선행, 자선, 수양, 수련 등 어떠한 인간 스스로의 행동으로도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그 마음 안에서부터 더러운 것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마15:17-20)
 
우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의롭게 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방제사장들이 자신의 신들에게 부르짖을 때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고 스스로 고통을 당하면서 피를 흘리기까지, 심지어 황홀경에 빠지기까지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상태를 엑스타시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인간의 노력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받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엘리야가 450명의 바알 선지자와 400인의 아세라 선지자와 갈멜산에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 참하나님을 가리는 영적 싸움을 발견합니다.(왕상18:25-29) 바알 선지자는 아침부터 정오를 지나 저녁 소제때까지 " 큰 소리로 부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였지만(왕상18:28) 참 하나님이 없는 인간들이 창안한 방법을 가지고 스스로 의로와지거나, 또는 신을 감동시키는 일이란 무력할 뿐 아무런 효험도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잠언의 지혜자는 존귀한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 주권자에 의해 부름받을 때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체 하지말며 대인의 자리에 서지 말라
이는 사람이 너더러 이리로 올라오라 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 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 (잠25:6-7)
 
의롭게 되려고 인간이 스스로 나아간다 할지라도 주권자의 부르심이 있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29-30)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부르심은 은혜입니다. 사도바울 자신을 사도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이처럼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갈1:15) 
 
 
 2. 율법의 무게

 
무신론자들에게서 의에 이르려하는 것들이 수양이나, 구제등의 자선행위로 의에 이르려고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경우는 그들의 조상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율법을 행함으로 의에 이르려고 합니다. 그들은 장로들이 전해준 유전(전통)과 함께 모세의 율법을 행함으로 스스로 의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들이지만 부패한 인간의 본성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유대인들은 그들과 구분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자신의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의 무게는 어느 정도 일까요? 율법은 사람들이 들어올릴 수 있을까요? 필자는 그 율법의 무게가 "누구도 멜수 없는 무게"라고 말합니다. 이 율법은 아무도 온전히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율법은 사람의 힘으로 들어올릴 수 없다고 절망적으로 말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연약성을 일깨우는 것이며, 인간의 불완전함을 일깨우는 말씀이며 또한 인간들에게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의 길이 열려야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율법이 얼마나 무거운지, 필자도 율법의 거울에 비추어 뒤를 돌아다보면 그동안 지은 죄를 생각하면 절망적입니다. 그것을 들어다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어도 나의 죄를 들어올리거나, 지울 수 있는 아무런 힘도 방법도 없음을 알기에 율법은 정말로 커다란 멍에가 되어버립니다. 율법에 의지해서 의롭게 되는데는 절망적인 선언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20)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갈3:11)
  
이처럼 스스로 의롭게 되어 스스로를 구원하기에는 인간의 능력은 너무나 무력합니다. 이러한 연약한 인간 뒤에서 역사하는 사단(마귀)의 훼방속에서 스스로 의롭게 되는 것은 요원한 듯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셔야만 했는지에 대하여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2:21)
  
인간 스스로 율법을 온전히 행하고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연약한 그릇이었기 때문에 부득불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죄의 멍에를 벗겨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속죄물되어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되지 아니한 거룩한 죽음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
 
 
3. 복음의 무게
 

 들 수 없는 죄의 무게를 끌고가 야하는 인간의 멍에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겁고 힘겨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 복음은 율법에서 자유할 수 있는 복음이었고, 그 복음의 무게는 너무나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행복한 것입니다.
복음을 소유할 수 있는 길 그것은 성경의 이말씀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그 길은 단순하게 "예수께로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쉽죠? 그러면 복음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요? 필자는 "누구나 멜수 있는 무게"라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9-30)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그쳤으므로(벧전4:1) 이제는 죄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예수께서 바꾸어주시는 멍에, 이것은 예수께로 나아오는 성도들에게 주신 죄로부터의 자유와 영원한 생명(요3:16)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인데, 이 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벗어버려야 할 죄의 멍에를 율법이라고 말한다면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새 멍에는 예수께서 모든 죄의 짐을 대신 저주시고 남은 것으로서의 멍에 곧 '서로 사랑하라는 멍에'로 귀착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요13:34)
 
사랑의 멍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나오는데 복음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데, 예수께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들 수 있는 무게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모두 이루는 이 멍에는 가볍습니다. 복음의 무게는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멜 수 있는 무게입니다.  
 
 
 4. 사람은 누구에게 인정받아야 하나?

 
 가벼운 멍에을 바꾸어 멘 성도들은 어쩌면 운동선수와 같이 경주하는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부르신 이 앞에 훗날 다시 섯을 때 우리는 인정받는 성도가 되어야 할 일만 남은 것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갈 때, 훗날 주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성도의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만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앞에서 섰을 때 인정받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아닐까요? 이 땅에서 인정받고 주님 앞에서 인정받지 못할까봐 근심하는 성도가 되기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봅시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찌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후10:17-18)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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